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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조선의 성리학』 (심산, 2020)
작성자: 미선 | 작성일: 2020.08.22 | 조회수: 30

 

이동희 ,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조선의 성리학』 (심산, 2020)


 

목차

머 리 말

제1부 주자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1장. 주자의 기(氣)의 개념에 대하여
2장. 주자의 리(理)에 대한 일고찰
3장. 주자 태극론(太極論)의 철학적, 종교적 의미

제2부 조선조 성리학의 철학적 전개: 화담과 회재

4장. 화담 서경덕 유기론(唯氣論)의 성리학적 의의
5장. 회재 이언적의 무극태극론변(無極太極論辨)의 주자학적 의의

제3부 퇴계 이황과 영남학파의 주자학

6장. 퇴계 이황 성리설의 철학적 함축
7장. 퇴계 이후 영남학파의 주자학 전개

제4부 율곡 이이와 기호학파의 주자학

8장. 율곡 이이의 성리학과 사회정책론
9장. 율곡 이후 기호학파의 주자학 전개

제5부 유기론과 유리론의 과정철학적 의미

10장. 녹문 임성주 유기론(唯氣論)의 과정철학적 의미
11장. 노사 기정진 유리론(唯理論)의 과정철학적 의미

참고문헌


출판사 책소개

한국의 철학적 전통을 하나의 문화로서 세계화 시대에 내놓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퇴계와 율곡을 상식적으로 많이 거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자의 학술 논문에서도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인 문헌해설적 연구, 소위 고증학적 연구는 아주 잘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것을 토대로 약간 보완할 수 있는 작업의 하나로 현대 철학적 해석의 하나의 시론으로서 화이트헤드(A.N. Whitehead, 1861~1947)의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과 주자학(넓게 말하면 성리학)을 비교하였다.

주자학의 이러한 해석은 앞에서 말한 대로 동양철학을 현대적 언어논리에서 논해 보려는 의도이지만, 마지막 목적은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시발로 한 조선조 성리학의 특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퇴·율 성리학의 근본이 주자의 성리학이지만, 수용하고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의 특징이 생겼다고 보고, 그것을 ‘한국의 철학적 사유의 전통’으로 부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원전 자체가 난해하여 본서는 비교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성리학 이해의 방편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고려 말 우리나라에 주자학이 들어온 이후 소위 철학적 사유는 조선조 화담 서경덕과 회재 이언적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이 퇴·율을 거쳐 개화하고, 그 후 그들의 추종자들이 학파 의식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더욱 부연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의 철학적 사유의 특색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또 사유의 폭도 좀 더 넓어졌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성리학 본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학파별 전개를 동시에 다룸으로써 역사적으로 조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과정철학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과 종교론으로서 이 우주를 관념적이고 체계적인 형이상학으로써 설명하려고 하는 사상인데, 이 자연을 ‘유기체(생명체)’로 보는 점에서는 유기체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존재는 ‘과정(process)’이라고 하여 종래의 실체적 존재론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뉴턴의 근대 물리학에 대해서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이 발견한 ‘물질의 미시세계’의 존재의 실상을 철학에서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적이고 고정적인 존재 대신에 끊임없이 생멸하는 존재의 기본 구성요소(基體)로서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라고 하는 개념을 창출하였다. 이것의 이념적 원리로서 ‘영원적 객체(eternal object)’를 또한 상정하였다. 만물은 이 둘의 유기적 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생멸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만물의 원자성(개체성), 즉 존재(있음)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거시세계가 아니라 미시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이 미시세계가 거시세계의 기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거시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즉 일정한 중력이나 태양계 영향력 아래에서 통용되는 근대과학의 물리법칙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체계는 불필요한 관념의 유희가 아니고, 미시세계의 사물의 실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성리학의 이에 대응되는 개념이 ‘기’와 ‘리’이다. 또 화이트헤드의 종교론에서는 ‘신(God)’을 요청하고 있다. 이 세계의 미적 조화의 원인은 역시 자연의 섭리로서 이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화이트헤드는 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서양 전통의 기독교 신관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특히 그는 위와 같은 형이상학적 지지를 받는 종교만이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여 ‘형이상학적 신관(神觀)’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의 신관과는 다른 점이 또 있다. 일종의 이성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성리학의 태극론이나 우주적 신비감, 예를 들면, 생생(生生)의 도(道)라든가 천지의 생물지심(生物之心)으로서의 인(仁)과 상통되는 점이 있다.

이 책은 여러 논문을 집합하였으므로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여기 다수의 논문이 위와 같은 문제의식과 주제를 갖고 있으므로 이 점만 이해한다면 통일적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한국철학의 세계화의 참뜻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본서에서는 이러한 과정철학과의 비교 이외에 우리나라 학자들이 성리학을 받아들여 오랫동안 우리 나름의 철학적 사유를 기울여오는 과정에서 한문식 글 읽기와 쓰기에서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거나 또는 해결하지 못했던 성리학의 아포리아도 들춰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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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아래의 글은 미천한 저의 추천글입니다. 그냥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

이 글은 추천사로 작성된 것이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필자는 누군가를 추천할 만큼의 그런 자격을 갖춘 이가 전혀 못 된다. 송구하게도 필자가 지닌 학문의 깜냥은 아직 보잘 것이 일천하여 추천사를 감당할 정도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나도 필자의 마음이 조심스럽고도 무겁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연구 저술이 국내 학계에 나오게 된 것 자체에는 말할 나위 없이 매우 기쁘고 반가운 마음 또한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굳이 헤아려보자면 필자에게 이 같은 지면이 허락된 이유에는, 아마도 이동희 선생님의 이 책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조선의 성리학』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로서의 적용과 인문적 관심의 확장을 갖춘 사례로서 이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있을 것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화이트헤드 연구자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도 이 책의 발간이 응당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이동희 선생님은 필자가 속해 있는 한국화이트헤드학회에서도 오랜 동안 함께 하시면서 동양철학 전공자로서 서양철학인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지녀왔었고 관련 논문들과 저술을 내오셨다. 몇 해 전에 나온 『주자학 신연구』(문사철, 2012)도 분명 그 결실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그 책에서도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희의 철학과 그리고 현대의 화이트헤드 과정철학과의 비교 연구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사실 필자의 경우 동양철학 전문가는 못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늘 갖고 있었고 몇몇 동양철학 서적들도 인상 깊게 읽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한 해 필자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유교철학사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 결과물로서 짤막한 논문형식의 글을 쓴 바가 있었는데, 필자로서는 당연히 여러 교차검증 역시 필요한 터라 이동희 선생님께도 기탄없는 비평과 조언을 부탁드렸던 적이 있었다. 생각건대 그 일로 이동희 선생님과의 학문적 관심사와도 겹쳐지는 인연으로서 좀 더 나아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다만 이동희 선생님의 입장은 화이트헤드 철학과 주자학[성리학] 간의 유사성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면 필자의 입장은 화이트헤드 철학과 주자학[성리학] 간의 차이점에 좀 더 초점을 두려는 점이 서로 다른 학문적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양자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도 같이 고려하고 있긴 하다. 단지 그 지향하는 바와 주된 초점의 방향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전공자이신 이동희 선생님의 동양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에는 필자가 전혀 미치지 못하는 터라 솔직히 비교할 바도 전혀 못 된다.


따라서 현재로선 필자가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추천의 글을 쓰는 데에는 화이트헤드 연구자로서 함께 나누고픈 한 가지가 있어서다. 최근 21세기 들어서도 유교철학의 현대성을 논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적어도 <21세기 유학>으로서의 현대성을 갖추려면, 송대 성리학 이후로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거쳐 오면서 누적적으로 구축해놓은 인류 지성사의 위대한 성과들도 함께 반영될 수 있도록, 새로운 업데이트 역시 함께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바로 그 점에서 적어도 화이트헤드 과정철학과의 대화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은 거다.

화이트헤드가 철저히 망각되었던 20세기 지성사에 비하면 21세기 들어서는 전세계적으로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널리 확장되고 있는 추세인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는 현재 화이트헤드 철학사상이 가장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의 대학교 내에는 많은 과정사상 연구 센터들이 들어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찍부터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계승했던 존 캅(John B. Cobb)과 데이비드 그리핀(David Ray Griffin)의 과정사상 저서들도 중국 대학의 학생들에게 점차 필독서로도 자리할 만큼 고무적인 점이 있다(Douglas Todd, "China embraces Alfred North Whitehead", The Vancouver Sun [December 10, 2008], 참조).

2018년과 2019년 두 해 연속으로 중국과 한국을 방문했던 존 캅 선생은 한국화이트헤드학회와의 만남 자리에서 중국 대학가의 과정사상 열풍을 직접 전해주기도 했었다. 지난해 존 캅과 함께 방한했던 왕쩌허(Wang Zhihe) 같은 사상가도 중국철학의 도(道, Tao) 개념과 화이트헤드 철학의 과정(process) 개념을 고찰하면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사상에 대한 중국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바가 있다. 게다가 그는 양자 간의 실질적인 학술 대화와 교류에 많은 공헌을 했을 만큼 실무적인 학자였다. 이처럼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동양철학과의 대화 교류 연구들이 현재에도 한껏 피어오르는 중에 있음을 필히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이러한 해외 분위기를 아직 국내 학계가 실감하고 있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국내 독자들이 이동희 선생님의 이 책을 통해 서양의 화이트헤드 철학과 조선의 성리학과의 교감에까지 이번에 재차 새롭게 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필자 개인에게도 고무적으로 다가오지만 이것은 앞으로의 국내 연구 전망도 더욱 밝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혹자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동서양 간의 단순 비교 논의로만 보거나 어쩌면 냉담하게만 대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문의 모험들은 여러 방면으로 시도될 필요가 있을 만큼, 온갖 사유들의 실험의 장(場)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또 다른 창조적 결실로 혹은 뜻밖의 새로운 출구와 활력을 창출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시대는 이미 동서융합의 정보 교류의 시대여서 다차원적ㆍ다문화적ㆍ다맥락적 비교 논의 자체를 진행 안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동희 선생님의 학문적 관심의 이력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미 1980년대―그때 당시엔 국내 화이트헤드 철학 연구 작업의 환경도 거의 갖춰지지 않았던 불모의 초창기 시절―에 아주 오래전부터 양자 간의 비교 연구 작업들을 꾸준히 해오셨다는 점에서 필자와 같은 연구자나 후학들에게도 좋은 계기와 자양분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로선 이동희 선생님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조선의 성리학』이라는 저작을 통해서도 다시금 동서철학 간의 다양한 정신들의 교차와 융합 그리고 새로운 창조적 발상의 모험까지도 함께 또한 풍요롭게 일어날 수 있기만을 보다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바다.